▲ 여의도 콘래드호텔 직원들이 2013년 2월19일 개관 100일을 맞아 보라색 풍선 100개를 날려보내고 있다. <뉴시스>

특급호텔 매물이 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최고등급인 특1급으로 분류되는 서울의 호텔만 해도 여의도 콘래드서울호텔,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 , 역삼동 르네상스호텔, 장충동 반얀트리호텔 등이 매물로 나와 있다. 특2급호텔인 이태원 캐피탈호텔과 상계동 콩코드호텔도 주인을 찾고 있다.

송도 특수를 기대하고 경쟁적으로 개관했던 인천 소재 특급호텔 매물도 풍년이다. 쉐라톤인천, 하버파크, 베니키아프리미어송도브릿지 등이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 특급호텔은 시장에 나온 지 최소 1년 이상 지났거나 재매각을 추진하는 등 중고매물인 경우가 많다.

금융회사들이 대체투자에 눈을 돌리면서 특급호텔 인수에 나서고 있지만 호텔사업보다 땅에 관심이 많다.

KB금융그룹은 르네상스호텔의 재개발 사업권을 따냈는데 향후 호텔사업을 접고 오피스텔 빌딩 등을 새로 지어 되판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특급호텔이 안 팔려서 문제고 팔려도 찬밥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 특급호텔 매각이 ‘특급거래’ 안 되는 이유

GS건설은 인터컨티넨탈호텔 등을 보유한 파르나스호텔 지분 67.56%에 대한 매각을 상반기에 완료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지난달 말에야 IMM프라이빗이쿼티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그러나 무역협회가 파르나스호텔 지분 31.89%를 보유하고 있어 최종매각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김태진 GS건설 전무는 “무역협회 지분에 따른 변수가 있어 협상이 좀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며 “8천억 원이 안되는 협상가격을 최대한 끌어 올리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밝혔다.

콘래드호텔 거래는 더욱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AIG그룹은 지난 2월 CXC종합캐피탈과 매각협상이 무산된 후 5개월 만에 콘래드호텔 매각을 재추진했다.

AIG그룹은 앞서 직접매각에 나섰지만 매각을 재추진하면서 매각주간사를 따로 선정했다. 그러나 콘래드호텔 매각가격은 당초 알려진 것보다 적은 4천억 원 미만이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투자은행업계 관계자는 “AIG그룹이 해외매각 가능성도 열어두고 매각주관사 선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국내 투자자들은 과잉공급 우려로 호텔투자에 조심스런 분위기”라고 말했다.

특급호텔 인수전이 흥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시장에 나온 매물은 많지만 인수자금을 마련할 여력이 있는 후보군이 적기 때문이다. 게다가 특급호텔 수익성이 점차 악화되고 있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지난 몇 년 새 중저가 비즈니스호텔이 늘면서 상대적으로 객실료가 비싼 특급호텔 객실 이용률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며 “어느 누가 높은 매각대금을 대면서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은 사업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매물로 나온 몇몇 특급호텔의 실적 하락세는 뚜렷하다.

파르나스호텔의 경우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24.3%, 159.4%씩 감소했다. 르네상스호텔도 같은 기간 매출은 13.2%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612.9%나 줄었다. 르네상스호텔 재개발 사업권을 획득한 KB부동산신탁도 호텔사업을 접고 부지와 건물을 오피스 빌딩 등으로 개발한 후 매각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특급호텔 실적악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비즈니스호텔은 정부가 관광객 유치를 위해 관련 요건을 완화하면서 대폭 늘었다. 특1급호텔의 경우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만 50% 대에 이른다. 반면 비즈니스호텔의 경우 연간 영업이익이 40~50%를 웃돌 만큼 수익성이 좋다는 점도 비즈니스호텔 공급확대를 부추기고 있다.

호텔협회 관계자는 “호텔업은 부동산 경기와 흐름을 같이 하는데 부동산 큰 손들의 관심도 끊긴 데다 경기 불확실성에 따라 기업 대부분이 긴축경영 중이어서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인수합병에 나서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외국인이 몰리는 황금연휴 기간에 호텔객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호텔 신축과 규제완화에 앞장선 정부의 안일한 대처가 일을 키웠다”고 덧붙였다.

▲ 호텔신라의 첫 비즈니스호텔 신라스테이 동탄의 내부 <호텔신라 블로그>

◆ 대기업들 특급호텔에서 비즈니스호텔로

대기업들의 특급호텔 사랑은 갈수록 시들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30대 대기업 중 포스코를 제외한 나머지 대기업들은 전국 곳곳에 특급호텔을 하나씩 보유하고 있다. 다른 대기업이 운영하는 호텔에 기업고객이나 직원들을 묵게 할 수 없다는 자존심이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들은 사업성보다 상징성을 따져 특급호텔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이 때문에 대기업들은 유동성 위기가 닥칠 때면 특급호텔을 1순위로 내다 팔았다. 현대그룹이 지난해 말 자구책의 일환으로 시장에 내놓은 반얀트리는 불과 2년 만에 모회사의 위기 탓에 또 다시 팔리는 신세가 됐다.

반얀트리호텔은 국내 부동산개발회사 어반오아시스가 남산타워호텔을 인수해 리모델링한 호텔이다. 2010년 6월 개장할 당시 ‘대한민국 상위 1% 클럽’을 표방했다. 개관 초기 연예인이나 미혼은 받지 않는다는 까다로운 입회심사와 1인당 1억3천만 원에 이르는 회원권 가격 등으로 화제가 됐다.

반얀트리호텔은 애초 기대와 달리 고가 회원권을 판매하는 데 애를 먹었고 700억 원에 이르는 공사비를 지불하지 못할 정도로 자금사정이 어려워졌다. 시공을 맡았던 쌍용건설이 담보권리를 행사해 호텔 매각에 나섰고 현대그룹이 2012년 6월 1635억 원에 인수했다.

그러나 현대그룹도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되자 반야트리호텔을 인수한지 불과 2년 만에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삼부토건(르네상스호텔), GS건설(파르나스호텔) 등이 특급호텔을 시장에 내놓은 배경중 하나도 건설경기 악화로 자금사정이 어려워진 것이다.

투자은행업계 관계자는 “요즘 매물로 나온 특급호텔은 모기업 재무구조 개선용이거나 비즈니스호텔과 경쟁에서 밀린 곳이 대부분”이라며 “호텔시장이 럭셔리한 최고급 호텔 또는 가격이 싼 비즈니스호텔로 양분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은 이제 상징성보다 수익성을 쫓아 비즈니스호텔사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롯데호텔은 국내 대기업 호텔 계열사 중 가장 먼저 비즈니스호텔 시장에 진출했다. 롯데호텔은 2009년 6월 롯데시티호텔마포를 개관하면서 현재 마포, 제주, 김포공항 등 국내 3곳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등 해외 에서 비즈니스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내년까지 국내 지점 5곳을 추가로 늘려 비즈니스호텔사업을 확대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호텔신라는 비즈니스호텔에서 롯데호텔에 비해 다소 출발이 늦었지만 빠르게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호텔신라는 지난해 11월 동탄에 신라스테이를 개관했고 올 하반기에만 서울 역삼, 마포, 서초, 종로, 서대문, 제주 등에 추가로 점포를 낸다.

대림산업은 현재 서울 여의도, 을지로, 강남, 마포 등에 비즈니스호텔을 짓고 있다. 이들 비즈니스호텔이 완공되면 대림산업은 약 3천 객실에 이르는 호텔 운영사가 된다. 대림산업은 비즈니스호텔 사업을 확대해 향후 4천 개까지 객실을 늘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 역삼동 르네상스호텔 조감

◆ 특급호텔 인수 나선 금융사 “호텔 말고 땅 원해”

금융사들이 그나마 특급호텔 인수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금융사들은 호텔사업이 아닌 특급호텔이 위치한 목 좋은 땅을 더 원하고 있다.

KB금융그룹은 최근 대체투자의 일환에서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호텔 재개발 사업권을 획득했다. KB부동산신탁과 KB투자증권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매각주체인 삼부토건과 매각대금 1조 원, 개발비용 최대 2조 원 등의 내용을 담은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KB컨소시엄은 재개발 계획에서 호텔사업은 제외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사업보다 르네상스호텔의 입지를 높이 평가해 투자에 나선 셈이다. KB투자증권 관계자는 “르네상스호텔 부지를 향후 오피스로 개발을 할 계획”이라며 “구체적 건축계획이 나온 후 자금조달 등 개발에 착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KB금융그룹이 르네상스호텔 부지에 부동산을 개발한 뒤 통합사옥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KB금융그룹은 그간 통합사옥을 마련하기 위해 여의도 MBC사옥 매입, 국제금융센터(IFC) 입주 등을 검토했지만 번번히 무산됐다.

그러나 KB금융그룹 관계자는 통합사옥에 대해 “여의도나 종로 등 접근성이 용이한 지역으로 알아보고 있다”며 “르네상스호텔 부지는 면적이 작아 본사로 활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나금융도 청담동 엘루이호텔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나금융은 현재 복합금융점포 부지를 알아보는 중인데 엘루이호텔이 마침 매물로 나온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올 하반기 시행령을 개정해 내년부터 계열사 간 복합금융점포 활성화 방안을 시행한다. 이 방안 시행되면 한 점포에서 은행, 보험, 증권 등 다른 금융계열사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금융사 입장에서 계열사간 판매 시너지와 함께 인력감축 효과도 있어 현재 많은 금융사들이 복합금융점포 부지를 마련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엘루이호텔은 청담동 영동대교 남단 노른자 땅에 위치하고 있다. 1992년 에머랄드호텔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뒤 지하에 위치한 나이트클럽 줄리아나(현 클럽엘루이)가 인기를 끌면서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주변에 대형 클럽들이 개장하면서 엘루이호텔의 실적이 급격하게 악화됐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호텔 실소유주가 최근 가족사정까지 겹치면서 급하게 처분하길 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건물규모와 입지에 비해서 다소 저렴하게 나온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엘루이호텔 매입 가능성에 대해 “호텔건물이라 오피스로 활용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며 “여러 인수 후보 중 하나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수정 기자  |  imcrystal@business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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